구례화엄사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및사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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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
求禮 華嚴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四菩薩立像
구화사.jpg
주제
어인정
O
길이
21
미션
12

개요[편집]

화엄사 각황전에 봉안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예천 학가산에서 화엄사로 온 계파 성능(桂坡 聖能)이 장육전(丈六殿, 지금의 각황전覺皇殿)을 중창한 후 1703년 주존불로 조성한 대형 불상으로서, 색난의 만년작(晩年作)이다. 각황전의 창건과 불상 조성은 화엄사 중창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불사(佛事)로서, 전각명도 왕실로부터 하사받아 이때부터 장육전에서 ‘각황전’으로 변경된 것이다. 또한 불상 조성에 있어 숙종을 비롯해 측근 왕실인사들인 인현왕후, 경종(景宗, 당시는 세자), 숙빈최씨(淑嬪崔氏), 영조(英祖, 당시는 연잉군) 등을 비롯해 여흥민씨, 해주오씨 등 유력가문들도 대거 참여했다는 점에서 18세기 초 최대의 왕실불사였음이 인정된다. 현재 불상에 재복장된 발원문에 의해 이 7존의 불보살상은 1703년 10월 4일에 조각승 색난(色難)을 중심으로, 충옥(沖玉), 일기(一幾) 등 24명의 조각승이 협업해 만든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석가여래좌상은 색난, 다보여래상과 문수보살상은 충옥, 아미타불상은 일기, 보현보살상은 웅원, 관음보살상은 색난과 추붕, 지적보살상은 추평이 각각 주도하여 조성한 사실을 통해 당시 최고 권위의 왕실발원 불상 조성에 색난이 초빙된 것은 조각승으로서 그의 명성이 대단히 높았음을 입증해 준다. 화엄사 각황전은 거대한 이층전각의 목조건물로서, 여기에 봉안된 불상 또한 규모에 맞는 웅장함과 형태미로 조성되었다. 주존불인 석가여래삼불좌상은 당당하고 묵직한 형태에 신체에 비해 큰 네모난 얼굴로 압도적이면서도 정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반면 삼불좌상의 좌우에 서 있는 사보살입상은 유사한 얼굴과 비례를 보이면서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묘사하여 대조를 이룬다. 이렇듯 서로 대비되는 여래와 보살의 조형성은 전각 내부를 웅장하고 경건한 분위기로 이끄는 효과를 보이는데 이는 색난의 우수한 감각과 조각기술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각황전 불상은 도상학적으로도 의의가 크다.

- 문화재청

1703년(숙종 29)년 만들어진 국가지정문화재.

특징[편집]

  • 로 시작해서 으로 끝나는 21글자 긴 단어이다.
  • 미션 글자 를 2개, 를 1개 포함하고 있다.
  • 과거 로 시작하는 최장문이었다.